007은 이대로 은퇴해야 하나? :: 정보경영 (4)

정보경영 2006 2006/04/24 12:10

정보는 이제, 정말 손가락 끝에 있다.

A 인터넷 접속 서비스 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인터넷 라인을 자기네 것으로 바꾸면 최신형 MP3 플레이어를 2만원에 준다고 했다. 현재 B 할인점에서 25만원에 팔리는 신제품이라고 한다. 재미 삼아 모델명을 물어 검색을 해보았다. C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니 13만원 정도에 판매되는 옛날 모델이었다. 이미 대체 신제품이 나와있었다. 우리가 직접 사면 2만원 보다는 더 줘야겠지만 어떻든 상담원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 부모님이 젊으셨을 때는 찾기 어렵거나 불가능했을 정보를 단 5초만에 얻었다. 물론 전화통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는 더 이상 숨겨진 보물이 아니다. 갈수록 투명해지고, 접근하기 쉬워지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정보는 귀족들의 성(城)에 꼭꼭 숨어 있었다. 힘센 집단, 높은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정보는 첩보에 가까웠다. 캐내고 훔치고 밝혀내는 것이었다. 접근할 수 없는 것에 접근해야 했기 때문이다. 1962년 '살인면허'로 등장해 수십 편을 이어온 007 시리즈를 보면 첩보원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나온다. 신분을 숨기고 비밀 무기와 초소형 카메라를 들고 정보가 있는 곳에 잠입한다. 절벽을 타고 비행기에서 뛰어 내린다. 영화의 과장을 감안하더라도 정보는 분명 땀나고 피나는 투쟁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이제 냉전은 끝났다. 이념의 자리에는 시장과 경제가 대신 들어섰다. 악의 무리(?) 소련은 사라졌다. 007의 적도 사라졌다. 덕분에 수 많은 '007들'의 일자리는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터넷이란 무서운 무기까지 등장했다.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를 누비지 않아도 의자에 앉아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때만 해도 워싱턴포스트의 두 기자는 진실을 캐러 목숨을 걸고 뛰어다녔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1992년 케빈 미트닉이라는 해커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세계 굴지의 기업 전산망을 교란했다. FBI는 몇 년간 추적해서 간신히 그를 붙잡았다. 다시 10년이 흐른 뒤 대한민국에 와보자. 2002년 소위 '민주당 살생부'가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노무현 후보에게 보였던 태도에 따라 분류한 이 게시물을 보고 정치인들은 조직적인 음모라고 했다. 하지만 그 문서는 평범한 직장인이 인터넷을 뒤져서 만든 것이었다. 공개된 정보를 편집한 것만으로 힘센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노년이 된 007에게 정보 혁명과 인터넷은 큰 부담이다. 물론 아직도 냉전식 첩보 활동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게다가 이젠 몸으로 뛰기도 어려운 나이다. 이제 007은 어떻게 해야 할까? 퇴직금을 받아서 본드걸과 함께 지내는게 최고의 선택일까? 실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2001 년 여름 백악관에는 미국 본토 테러 가능성에 대한 보고가 올라왔다. 보고의 자세한 내용은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어떻든 보고된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9.11 테러 전날인 지난 2001년 9월 10일에는 '내일이 행동개시의 날이다' '경기가 곧 시작되려 한다'는 알-카에다의 메시지가 국방부 산하 국가안보국(NSA)에 포착됐지만 테러발생후 며칠이 지나도록 번역하지 못했다. 더 중요한 것을 번역하지 않은 채 쌓아둔 것이다.

쏟아지는 정보 더미에 묻혀 중요한 정보가 빛을 잃는다. 정보가 정보를 방해한다. 정보 과잉은 분석과 판단의 마비를 가져온다. 정보 수집에 목숨을 걸던 시대는 지나갔다. 분석과 판단이 빛을 발하는 시대가 왔다. 그래서 007은 섣부른 은퇴를 할 필요가 없다. 이전의 경험을 되살려 넘치는 정보를 걸러내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된다. 무시되는 정보더미에서 보석을 발견하고 조각난 정보들의 퍼즐을 맞추는 능력을 강화하고 무기로 삼으면 된다.

사실 첩보원들이 다루는 정보의 정확한 의미는 자료 수준의 흔한 정보가 아니다. 미국 CIA(중앙 정보국)에 서의 약자 'I'는 Information이 아니라 Intelligence다. 똑같이 정보로 번역되지만 Intelligence는 분석된 정보, 활용 가능한 정보를 말한다. 또한 정보는 지식과도 다르다. 지식은 검색되지 않는다. 지식은 오직 사람에게만 있다. 예나 지금이나 첩보전의 최대 무기는 첨단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냉전은 사라졌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경제 전쟁, 지식 전쟁이다. 정보와 지식으로 사는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007이다.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 그렇다. 하지만 총이나 낙하산이나 위조 여권은 소용이 없다. 오직 날카로운 눈과 통찰력만이 최고의 무기다. 실제로 요즘 해외에 파견된 CIA 요원들의 상당수는 해당 국가의 신문을 읽고 분석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인터넷 시대, 007이 사는 법이다. @

마지막 수정일: 2006.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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