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은 낙원일까? 감옥일까? :: 정보경영 (3)

정보경영 2006 2006/04/23 12:03

정보 기술은 항상 정보 감옥을 만드는 기술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 넘치는 정보를 다 볼 수 없기에 매체와 도구의 역할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덕분에 정보들은 공장 생산품처럼 똑같아지기 쉽다. 사람들은 똑같은 사이트에 모이고, 똑같은 TV를 보고, 똑같은 신문을 읽고, 똑같은 책을 보면서, 똑같은 관심사를 소비한다. 기술이 점령한 자리에는 '우연'의 꽃이 필 여지가 없다.

그들이 우리 대신 골라준다.

한때 MBC의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 책을 선정하고 읽게 하는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코너가 있었다. 이 코너에 선정된 책은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독서 장려와 출판계의 불황이라는 필요가 절묘하게 만나 큰 인기를 누렸다.

만약 여러분이 거기 선정된 책의 작가이거나 출판사 사장이라면 어떨까? 좋은 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다. 더구나 큰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당연히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다.

어느날 느낌표 관계자가 '녹색평론'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다. 권정생 선생님의 『우리들의 하느님』이라는 책이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책이 많이 팔릴테니 20만부를 미리 준비해 달라고 했다. 20만부!

하지만 출판사 사장은 거부했다. 좋은 책이 소개되는 것도 좋고 돈버는 것도 나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매체에서 강요하듯이 소개되는 것이 별로 반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황한 관계자는 작가인 권정생 선생님에게 또 전화를 했다. 하지만 역시 거절의 말을 들어야 했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 도서관이나 책방에 가서 혼자 책을 고르는 순간이다. 그걸 왜 방송에서 막느냐?'

느낌표는 서둘러 다른 책을 골라야했다.

책 선정 자체가 나쁜 일도 아니고 갑자기 큰 피해자가 생기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한걸음 뒤로 가서 보면 빼앗기는 것이 있다. 스스로 고르는 즐거움, 우연히 만나는 기쁨이 사라진다. 결국 정보 경영의 능력 - 정보를 고르고 선택하는 능력이 사라진다.

정보가 많아질 수록 정보를 골라주는 매개자(편집자, 선별자)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매개자가 골라주는 정보는 큰 관심을 받게 된다. 정보는 갈수록 양극화된다. 책은 베스트셀러와 기타 책들로 구분되고, 영화는 히트 영화와 사라지는 영화들로 구분된다. TV나 신문이 책을 골라주면 멀쩡하던(?) 다른 베스트셀러가 뒤로 밀리고 만다.  오프라 윈프리의 북클럽이 베스트셀러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 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서 한때 이 코너가 중단되었으나, 전체적인 책의 판매가 줄었다는 작가의 탄원이 이어졌고 결국 2005년 다시 시작되었다.)

여기서 '문화 권력' 운운하며 뻔한 말로 비판할 생각은 없다. 이들의 등장은 필연일 뿐 아니라 오히려 지식 사회는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성공의 기회를 준다. 고르고 판단하고 편집하는 능력이 점점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공과 혁신은 모두 쳐다보는 정보가 아니라 무시되는 정보 속에 있기 때문이다.

개별 자료 처리에 모든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낭비다. 빠르고 많은 일의 처리는 이제 컴퓨터의 몫이다. 걸어다니는 사전(Walking Dictionary)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넓이와 양에 집착하는 사람은 컴퓨터와 경쟁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판단과 편집의 영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그 영역조차 다른 사람, 다른 매체, 다른 도구에 모두 맡기는 사람들이 많다. 컴퓨터와 매체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독자와 소비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적어도 자기 분야에서는 매체와 도구를 편집자와 기자로 두고 그 위에서 편집장이 되어야 한다. 선택 당하지 말고 선택해야 한다.

호주 시드니에 가면 굴드스 북 아케이드(Gould's Book Arcade)라고 하는 특이한 헌책방이 있다. 백만권 가까운 책이 있는 이 서점의 특징은 정리를 별로 하지 않은 것이다.무작정 꽂혀 있는 책 더미 속으로, 말 그대로 모험을 떠나는 서점이다. 뭐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서점! 생각만 해도 신나지 않은가?

Gould

우리는 매체와 도구를 적절히 활용하면서도 우연을 만들고 생(生)정보와 부딪히는 일을 즐겨야 한다. 그 옛날 가끔씩 궁궐을 빠져나와 백성을 살피던 임금님처럼 말이다. 서점, 전철, 시장, 길거리 어디든 좋다. 우연을 즐기자. 무엇을 고를지 한참 고민해보자.

아무리 궁궐이라고 우겨도 벗어날 수 없다면 결국 감옥일 뿐이다. @

마지막 수정일: 2006.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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