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표의 표정이 궁금하다 :: 정보경영(1)

정보경영 2006 2006/04/22 11:56

정보의 시대는 곧 정보 매체의 시대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정보를 전해주고 관리해주는 매체와 기술에 더욱 의지한다. 신문, TV에서 포탈 뉴스와 검색엔진까지 수 많은 매체들이 우리 대신 정보를 골라준다. 매체를 통한 간접 체험이 직접 체험을 압도한지 오래다. 직간접의 경계마저 모호해지고 있다. (탤런트 최불암의 부인은 김혜자씨고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간달프는 실존했던 인물이다) 물론 인터넷 때문에 개별 매체에 대한 절대적 신뢰는 많이 약해졌다. 하지만 매체 의존은 여전하다. 매체를 비교해준다는 매체 역시 결국은 또 매체 아닌가?

정보 매체는 때로 위험하다. 정보를 쏟아내는 대신 지식과 지혜를 마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수박 겉 핥기, 정신없는 속도와 양, 본질을 가리는 자극, 때로는 숨은 의도까지 웅크리고 있을 때가 있다.

매체 속으로 들어가보자.

대통령 탄핵과 국회의원 총선거가 나라를 흔들던 2004년 4월 9일 아침,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 집중』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의 인터뷰가 있었다. 이 인터뷰는 당시의 긴장된 정국과 맞물려 큰 화제가 되었다. 소위 “저하고 싸움하시는 거예요?” 파문이었다. 그 대목을 보면 이렇다.

⊙ 손석희/ 진행 :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약속을 하시겠다, 그런 말씀이시군요?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 예. ⊙ 손석희/ 진행 : 그런데 유권자들의 판단은 과거를 보고 하는 판단일텐데요?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 저하고 싸움하시는 거예요? ⊙ 손석희/ 진행 : 그렇진 않습니다.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한쪽에서는 박근혜 대표의 실체가 드러났다며 흥분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손석희 아나운서(혹은 MBC)의 태도와 의도를 문제 삼았다. 같은 사건을 두고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사실은 하나인데 해석과 판단은 달랐다. 라디오를 직접 듣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매체를 통해서 이 소식을 접했다.

각 매체는 이야기를 다르게 전한다. 동아일보는 손 아나운서의 무례함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손씨가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을 계속 던지자 미소를 지으며 ‘애교 있게’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라디오 인터뷰를 놓고  미소 지었다고 말하는 것은 어색하다. 오마이뉴스는 박근혜 대표의 당황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당황했다는 것 역시 기자의 주관적 판단일 수밖에 없다.

'당황한 박대표는...피해갔다....발끈했다.'

스포츠신문 굿데이는 한술 더 뜬다.

'...대판 싸울 뻔 했다...손씨가 발을 빼서 충돌 위기를 넘겼다.'

박근혜 대표는 화가 나서 발끈한 것인가? 아니면 애교있게 비판한 것인가? 이 둘은 전혀 다른 것이다. 손석희 아나운서는 도를 넘어섰는가? 아니면 날카로운 질문을 한 것인가? 사실은 하나인데 진실은 여러 개인가?

정보는 매체를 통과하는 순간 이미 처음의 정보가 아니다. 상황은 생략되고 오직 매체가 고르고 색칠한 결과만이 남는다. 의도적 왜곡이든 나름의 진실이든 결국 처음과는 다르다. 우리는 허상에 빠질 위험에 항상 놓여 있다.

지식은 넓이가 아니라 깊이에서 나온다. 하지만 정보 매체는 '빨리'와 '많이' 쪽에 서 있다. 정보를 경영하고 지식의 봉우리에 도달하려면 매체를 넘어서야 한다. 정보 경영은 사실상 정보 매체 경영이다. 필요할 때는 언제든 정보 매체를 꿰뚫고 그 너머를 봐야 한다. 불확실성을 줄이고 제대로 의사 결정을 할 재료로 바꾸어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세계에 가까이 가야 한다.

1. 헤드라인 넘어서기

    폴 햄, '금메달 양보 가능'

    폴 햄, '국제체조연맹 처분 따를 것'

    폴 햄, '금메달은 여전히 내 것'

올림픽 체조 오심에 관련된 미국의 폴 햄 선수에 대한 기사 제목들이다. 전혀 다른 이야기 같지만 실제는 거의 같은 기사다. 제목이 다를 뿐이다. 폴 햄은 '국제체조연맹의 결정에 따르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챔피언'이라고 말했다. 어떤 부분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폴 햄이 전혀 다른 말은 한 것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헤드라인만을 대충 읽고 사실을 짐작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본문 전달 보다 독자 유혹 쪽에 쏠려 있는 헤드라인이 많아지는 상황이다. '‘폭력·노출’ 케이블은 포르노?' 같은 스타일의 질문형·호기심 유발형 헤드라인은 원래 스포츠 신문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일반화되었다. 모든 신문이 스포츠 신문화 되어 버린 듯하다. 한 줄 링크가 모든 것을 대변하는 웹에서는 더 치열하다. 종이신문처럼 본문을 함께 훑어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웹에서는 기존의 힘이 해체된다. 공평한 대신 더 격렬하다. 싸움이 치열할수록 자극과 허탈함도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헤드라인은 더 읽을 정보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정보를 낙인(烙印) 찍어서는 안된다. 무시할 때와 더 깊이 들어갈 때를 구분해야 한다.

2. 정보 재구성 하기

매체 이야기만 듣고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훌륭한 탐정은 언제나 사건을 재구성한다. 용의자와 목격자의 진술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의견과 의도와 기교를 제거한 후 사실을 취하고 진실을 파악한다.

(1) 상황 속으로 들어간다

정보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정보에는 맥락(context)과 사회적 요소가 함께 있다. 하지만 정보가 매체를 통과할 때, 정보가 디지털화될 때 상황은 단절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보를 보다 정확히 판단하고 싶다면 정보를 맥락 속에서 재구성해야 한다. 많은 기술 지상 주의자들의 실수는 모든 것을 디지털화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책 정보는 디지털화될 수 있지만 도서관은 디지털화될 수 없다. 동영상 강의는 디지털화될 수 있지만 학교는 디지털화될 수 없다. 인터넷 서점은 고작해야 책 정보와 결제만 디지털화 되었을 뿐이다. 존재를 지탱하는 하부 구조는 모두 아날로그다. 컴퓨터는 헌책과 헌책방이 가지는 참된 의미를 영원히 알지 못한다. 매체를 통과한 정보는 context에서 text가 분리되고 문장에서 단어가 분리된 것이다. 매체가 편집하기 전의 상황 속으로 가서 그 주변과 함께 봐야 한다.

손석희-박근혜 인터뷰 속으로 돌아가보자.

어떤 상황이 함께 있는가? 한나라당-MBC 사이에는 이미 긴장이 있었다. 일부 신문과 방송 사이도 마찬가지다. 손석희의 스타일, 박근혜의 스타일을 알면 더 도움이 된다. 평소와 다른 태도를 보였을 수도 있고, 원래 충돌할 수밖에 없는 스타일의 만남일 수도 있다.

(2)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또한 정보의 파편들아 모아 최대한 입체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매체들의 보도 말고 원래의 인터뷰를 살펴보자.

최소한 직접 눈으로 전체를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생생하지 못하다. 원래의 라디오 인터뷰를 들어보자.

         ↑   인터뷰 녹음 부분   ↑

어떤가? 정말 싸울 뻔 한건가? 아니면 헤프닝인가? 만약 이 인터뷰가 TV로 진행되었다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박 대표와 손 아나운서의 얼굴 표정 같은 것 말이다. 그럼 보다 확실해졌을 것이다.

비슷한 일이 실제 있었다.

1960년 리처드 닉슨과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선거 토론이었다. 이 토론을 라디오로 들은 사람과 TV로 본 사람 사이에는 정반대의 평가가 내려졌다. 라디오로 들은 사람은 논리적으로 잘 대답한 닉슨이 이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TV로 본 사람들은 달랐다. 안절부절 하며 굳어 있는 닉슨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케네디의 자신감 있는 모습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물론 케네디가 선거에서 이겼다. 버글즈(Buggles) 의 노래처럼 'Video Killed the Radio Star'였다.

물론 완전한 원래의 정보라는 건 환상이다. TV가 원래 모습이라는 것도 환상이다. 하지만 정보를 입체적으로 보면 불확실성은 그만큼 줄어든다.

3. 매체 의심하기

하나의 정보 매체에만 의존하면 감옥에 갇힌 것과 다름 없다. 이미 알고 있거나 믿는 것만 계속 반복해서 보게 된다. 그렇게해서 쌓이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함정이다. 매체가 감춘 세계는 없는 세계다. 매체가 실수를 하거나 의도를 가지면 그냥 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다른 매체, 다른 의견을 자주 참고해야 한다. 우리가 믿는 바를 자주 시험해 봐야 한다.

정보에는 어차피 해석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모든 정보를 직접 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매체를 비교하는 것이 최선이다. 신문이나 TV 같은 개별 언론이든, 포탈과 같은 편집 언론이든, 무섭게 정보의 입구를 장악해가는 검색엔진이든 말이다. 모든 매체는 메시지이고 의견이고 의도다. 정보 사회는 정보 편식, 이미지 세뇌 사회가 되기 쉽다. 이른 바 정보 감옥이다. '아니면 말고'나 '~카더라' 기사의 제목만 읽고 확대 재생산 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는가? 특정 신문만을 보는 독자가 특정 정치인을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본다. 그 신문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 그 독자가 그 신문을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검색엔진 역시 우리를 속일 수 있다. 조금만 살펴 보면 검색결과 첫 페이지에는 돈받고 자리를 차지한 것들이 많다. 물론 합법적인 광고 상품들이다. 하지만 사용자에게 광고라고 분명히 말해주지 않았다면 속이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는 매체를 의심해야 한다. 비교해야 한다. 그래야 더 자유로울 수 있다.

(물론 이것이 극단적으로 가면 거꾸로 음모론에 빠져 허우적댈 수도 있다. 매체 의심은 지식과 지혜를 만드는 과정 중의 일부일 뿐이다. 매체 의심 자체에 집착하는 것은 매체 중독만큼이나 비생산적이다.)

◇◆◇◆◇◆

바쁜 일상 속에서 항상 모든 것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 사회다. 지식 사회는 탁월한 개인들이 성공하는 사회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모두 지식 공장의 사장들이다. 매체가 주는 정보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는 평범 그 이상을 벗어날 수 없다. 그냥 정보 수다꾼에 불과하다. 우리는 스스로의 지식을 책임져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필요할 때마다 매체를 꿰뚫어 봐야 한다.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다.

완전하게 객관적인 정보란 없다. 정보는 해석해야 의미가 생기고, 해석하는 순간 주관이 개입된다. 우주 비행사들은 똑 같은 지구를 본다. 하지만 누구는 지구를 만든 창조주를 찬양하고, 누구는 아무리봐도 신(神)이 없다며 무신론을 확고히 한다. 어차피 선택의 문제라면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정보를 입체적으로 보자. 주관을 두려워하지 말자.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라'는 증권가의 법칙은 역설적으로 매체를 보는 방법을 상징한다.매체를 보되, 다르게 보고 다르게 선택하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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